윤석열 정부는 연초부터 ‘연금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을 3대 개혁으로 천명해 추진하고 있다. 이 중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노동개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개혁’이라 쓰고 ‘노조개악’ 혹은 ‘노조탄압’이라고 읽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지난해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외치며 파업했을 때 이를 봉쇄하는 데 정부는 올인했다. 당시 정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잘 들어봐 주십시오”라고 강조하며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를 두고 전 국민 듣기평가를 한참 진행할 때였다(하지만 귀지를 파고 몇 번을 들어 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날리면’이 아니라 ‘바이든’으로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높지 않던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159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국내든 국외든 정부는 위기에 몰렸다.
정부는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정부의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화물연대의 파업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좋은 건수를 잡은 것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정부는 화물연대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바이든/날리면’과 ‘이태원 압사 참사’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맥을 못 썼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앞다퉈 화물연대의 “불법파업”을 부각시켰다. 대통령실·여당·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검찰·경찰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화물연대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정부 각 부처들이 이렇게 협업을 잘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런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기적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후반에서 40% 초반으로 급상승했다. 40% 지지율은 대통령 취임 초반에 잠깐 보였던 꿈의 숫자인데 화물연대 파업에 강하게 대응하자 달성된 것이다. 이때 정부는 알았다. 정책으로 대통령 지지율을 40%로 끌어 올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바로 정책 말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화물연대 사례처럼 노조를 때려잡는 것을 선택했다. 어차피 시장과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노조는 방해물이고 귀찮은 존재였다.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이런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있을까. 그런데 노조를 잡을 수 있는 그럴싸한 명분이 없었다. 아직 연초여서 단체교섭으로 파업하는 노조도 없었다. 고민 끝에 세 가지 테마를 잡았다.
반공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고려해 ‘간첩’을 첫 번째 테마로 잡았다. 정부는 제주·창원 등에 있는 노조활동가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하고 민주노총 본부, 지역본부, 조합원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다. 이미 사문화한 국가보안법을 들이댔다. 곧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야 하는 국정원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학교 ‘과잠(학과 잠바)’이 연상되는 ‘국정원’ 글씨가 박힌 ‘국잠(국정원 잠바)’를 입고 압수수색을 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경쟁하며 노조 간첩단 잡기에 혈안이 됐다. 노조 관계자들이 진짜 간첩인지 아닌지는 향후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다만, 70·80년대나 가능했던 대공 사건이 여전히 정부의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테마는 노조의 불법성을 타깃으로 잡았고 양대 노총 건설기계 노조가 먹잇감이 됐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자기 명의의 건설기계로 건설사와 작업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들이다. 이미 2021년 노동부는 공식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구직급여와 출산전후휴가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12개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건설기계조종사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공정위는 특수고용직이어도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서비스를 제공해 대가를 받는다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에 해당해 공정위가 조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자기 차량을 가진 특수고용직들의 행정 업무는 노동부가 아니라 공정위가 맡는 시대가 왔다.
세 번째는 돈과 관련된 것으로 노조 회계장부 점검이다. 매년 노동부는 국고로 노동단체와 노사관계 비영리단체를 지원한다. 이것을 빌미로 노조가 불법적으로 국고보조금를 사용하는 것처럼 몰아가면서 노조에 50여종의 파일 등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사실 현재 모든 국고 보조금은 정부가 개발한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인 ‘e나라도움’에 사용내역을 입력하도록 의무화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노동부는 이미 노조 회계가 투명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이 기회에 노조 운영을 자세히 살펴본 뒤 또 다른 꼬투리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번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정부와 언론에 의해 노조는 부도덕한 조직으로 낙인찍혔다.
노동자들과 이들의 이해대변 조직인 노조는 사회의 주요한 구성요소다. 정부가 지지율 상승과 국면 전환을 위해 강하게 추진하는 ‘노조와의 전쟁’은 무지와 무능을 보여줄 뿐이다. 정부는 노조와의 전쟁 선포가 아니라 ‘노조와 대화, 협력 그리고 상호 견제’하는 인식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고통받는 민생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지금 애먼 곳에 힘을 허비할 시간이 없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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