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너지 ‘정의로운 전환’, 노동계가 주도적인 역할 해야”

참여연대·한국노총 공동 포럼…“차 부품사·석탄발전 고용 불안 대책 마련 나서야”

자동차와 에너지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계가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기업은 탄소 중립을 경영 환경의 변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정의로운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은 17일 ‘자동차 산업과 에너지 산업 전환에 있어 정의로운 전환의 모색’ 포럼을 열었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산업 전환이 이뤄지면서 고용 불안 등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부품사 노동자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에너지 산업과 관련해서는 석탄발전의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에너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의로운 전환, 정부·기업에 맡겨선 안 돼…고용 불안 대책 마련해야

자동차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탄소 중립에 적응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부 역할은 기업의 탄소 중립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쳐, 정의로운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기업은 기술 개발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자동차 사업 분야 발제를 맡은 박근태 활동가(전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는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같은 상급 조직을 중심으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면서도 “기업·사업장 단위 노동조합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저감이라는 대세에 동참하면서,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합 내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직자 또는 조합원 고용 안정에만 집중하는 현상 유지 접근은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면서 “구조 개혁 또는 변혁적 접근을 원한다면 더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세력 확장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박 활동가는 “현재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 않은 것은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라며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등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경계를 넘는 조직적 기초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동자 배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2022년 새로 구성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 대표를 배제하고 있다. 17개 광역단체 탄녹위는 노동계 대표가 1명뿐이다. 탄녹위는 정부와 지자체의 탄소중립 관련 주요 정책과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탄소중립 관련 대책이 핵심 이해관계자인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정부 주도하에 일부 기업관계자와 기술전문가를 중심으로 수립되고 있다”며 “노동 현장의 실태가 제대로 분석되지 않고 일자리의 소멸과 새로운 일자리의 질 저하 문제, 교육 문제, 노동자 권리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이 직면할 위기를 짚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전기차와 현지 생산 물량을 우대하는 보조금 정책을 펴면서, 한국의 자동차 생산·수출 물량이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중교통 인프라 강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으로 한국 시장 판매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내연기관차 부품사는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 불안에 직면했다. 2030년 전기차 비중이 33%에 도달할 경우, 현재 존재하는 9천여 개의 부품사 가운데 900개 기업은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원하청 위계성도 심화될 전망이다. 자동차 산업의 종속 구조는 하청사에 대한원청의 영업이익 통제 등 불공정 거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분야가 확장된다고 해도, 하드웨어 분야에서의 완성차 기업과 부품사 간 위계 관계가 수평화되기는 어렵다는 게 박 활동가 설명이다. 그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도 부품사는 완성차 기업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산업 전환을 거치면서 완성차 기업과와 부품사 사이 위계가 더 강화되고, 부품사의 종속성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 부품사에 대한 대책 마련이 강조됐다. 미래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박 연구원 제언이다. 그는 “급여·복지 등 보상, 근무 여건, 고용안정성 등에서 구직자가 부품사보다 완성차 기업 연구소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만회할 우대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차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공유하는 공적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며 “거점 국립대학이 이를 위한 유력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기차 관련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기차가 확산하면서 주유 관련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전기차 충전과 배터리 재순환 관련 일자리는 늘어나게 된다. 박 활동가는 “산업 전환에 따라 늘어나게 될 일자리를 좋은 녹색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노동조합과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공공이 전면적인 투자 나서야

에너지 산업에서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가 강조된다. 국가가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를 주도해,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 산업의 민간 개방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 따라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우려가 크다. 송·배전과 판매 시장은 한전이 독점하지만, 발전 시장은 민간 비중이 30~40%에 달한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은 “자유화된 전력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자발적인 사업 유인이 불가능하다”며 “공공적 재생에너지 발전 자회사를 통해 전면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법 제정을 제안했다. 공공재생에너지의 정의와 목표를 담은 공공재생에너지법이다. 국가 투자와 발전공기업을 통한 재생에너지 개발에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는 기본법의 기능을 한다. 발전공사법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발전공사 설립과 운영의 법적 근거를 담는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요구됐다. 이 소장은 노동자 재교육과 전직 지원 사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선고용-후교육’ 방식의 취업 연계를 제안했다. 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실효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선자 부원장도 석탄발전소 등 ‘퇴장 산업’과 관련한 지원 체계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석탄발전 산업이 집중된 충남지역(당진·태안·보령)과 경남지역(하동·고성) 등에서는 화력발전 산업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같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유사한 일자리로 즉시 대체되지 않아,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석탄발전 산업 퇴출에 대한 보상과 사회안정망 등 정책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부원장은 정부의 교육·훈련 사업을 산업 정책과 연계해 실효성을 제고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 사례가 제시됐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관청을 설치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9개 지역에 16개의 관청을 세워 2천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향후 5천개로 늘릴 계획이다. 

조한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