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논의는 다른 국면에 와있다.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다양한 근무형태를 경험하며 기존 9 to 6 체제에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업종에 따라서, 직군에 따라서 차이는 있다.

한편으로 주4.5일제, 주4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사회 의제화되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이 주4일제를 시범 진행해보기도 하고, 주요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다른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업 여력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한 곳과 아닌 곳이 갈리며 양극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노동시간 유연화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러한 여러 고민들이 혼재한 가운데, 유연근무제 도입과 나아가 조직문화 개선까지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사발전재단이 9일 오후 서울 R.ENA 컨벤션에서 ‘2024년 제2차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 주제는 유연근무제 도입과 조직문화 개선으로, ‘테크빌교육’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례가 공유됐다. 두 곳 모두 시앤피컨설팅이 일터혁신 컨설팅을 진행했다.

테크빌교육,
유연근무제 도입, 과정이 중요하다

테크빌교육(주)는 2001년 2월 설립된 서울 소재 기업이다. 에듀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기반 교육기업이며, 교원 온라인 연수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기준 직원 수는 115명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249억 원이다.

테크빌교육은 ‘젊은 세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하는 문화가 바뀔 필요성이 커졌고, IT기업의 특성상 잦은 이직률을 낮추고 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민에서 일터혁신을 추진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자율적인 자기 업무 시간 운영 요구, 금전적 보상으로 이직률을 낮추는 데는 대기업 수준이 높기에 비금적적 보상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에 따라 ‘유연근무제 도입’에 공을 들였다.

전직원 설문조사와 경영진, 근로자대표, 인사담당자, 직원 등을 대상으로 집중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적합한 유연근무제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 토론을 거쳐 선택근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전 직원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으며, 주당 평균 실 노동시간이 2021년 기준 45.5시간에서 37.1시간으로 18% 단축됐다. 연차사용률 또한 같은 기간 80%에서 98.5%로 증대됐다. 직무몰입도, 조직몰입도, 직장만족도도 높아졌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삶 균형, 육아 부담 경감, 자기 주도적 업무 시간 설정 등이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선택근무제를 도입하며, 코어타임(업무집중 시간) 설정에 있어 노동자는 좀 더 유연성 부여를, 사용자는 코어타임 확대를 이야기하며 노사가 다른 의견으로 대립했으나 이를 수차례 토론으로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합의로 기업 내 제도 안착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다른 지점은 1달 단위 선택근무 계획이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설정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돼 있다는 것과, 해당 내용이 전 사원을 대상으로 공개가 되기 때문에 선택근무 시간 설정에 있어 관리자와의 친소관계, 혹은 사내 권력관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업장 내 공정하며 자율적인 근무시간 결정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조직문화 개선, 변화관리자를 활용하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관리로 국민생활의 안전과 환경보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준정부기관이다. 2009년 한국방폐물관리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2013년에 한국원자력환경공단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경주에 소재해 있으며, 올해 기준 412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직장내 괴롭힘, 계층·부서 사이 갈등 등이 가시화되면서 ‘인권경영’을 제도적·문화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직문화 개선 일터혁신 컨설팅을 진행했다.

아울러 일터혁신 컨설팅을 진행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디자인팀을 만들어 노사가 컨설팅 주요 활동을 전개했다.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사항인데, 특히 조직문화 개선에서 대표자의 행위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번 컨설팅 내용에 부합하는 구조를 갖춘 셈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조직문화 진단 설문을 전직원 대상으로 실시하고,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주의 깊게 봐야할 지점은 조직내 변화관리자를 선발했다는 점이다. 소통진단 설문을 통해 직원들의 관계망을 분석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조직문화 개선에 나선 것이다. 변화관리자가 개선된 조직문화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공단 창립 최초로 국민권익위가 주관한 공공기관 대상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달성했다. 

유연근무제,
‘임금 손실’ ‘노동강도 강화’ 안 돼

사례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는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연근무제 도입과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모범 기업 사례를 들을 수 있었고, 해당 사례가 산업 현장에 전파됐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유연근무제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황선자 부원장은 “유연근무제가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라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 및 관행이 뿌리내린 상황에서 인건비 절감이나 압축 노동, 초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동열 교수 역시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손실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강화에 따른 과부하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테크빌교육의 경우 연봉제여 임근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

김동배 교수는 일터에서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공공 부문의 경우 특유의 문화가 존재하고 인적자원관리를 바꿔야 할 인세티브적 요소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조직문화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