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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일·생활 균형제도 그 이면의 차별적 요소(2022.11.01)  
이 름 : 매일노동뉴스
내 용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매년 개선되고 있음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은 이미 유명하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010년 187시간에서 2021년 164.2시간으로 급감했으나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로 나타났다.

2004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40시간 근무제’ 이른바 ‘주 5일 근무제’를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04년 7월1일자로 시행됐다.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 외에도 시차출퇴근제, 근로시간단축제 등 유연근무제와 같이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고, 일·생활 균형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추진돼 왔다. 실제로 중앙정부는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 균형의 실천’을 국정과제로 삼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비롯한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일과 생활의 균형 있는 삶은 과거 일과 가족돌봄 및 가사노동의 균형을 의미했던 ‘일·가족 양립’에서 출발한다. 일·가족 양립은 표면적으로 개인이 서로 상충되는 일과 가족생활의 균형점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성 역할 규범상 여전히 주된 돌봄 책임자인 여성이 가족돌봄을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 또는 질(quality) 낮은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심각할 경우 노동경력을 단절시키는 것에 대한 방편 등 가사와 돌봄의 여성화 강화기제가 내재돼 있었다. 즉 과거의 일·가족 양립은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을 강화하거나 임금노동과 동시에 가사노동까지 동시에 수행하는 과부담을 야기하는 등 성평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대두됐다. 이에 가족돌봄을 넘어서 개인의 건강과 휴식, 취미 및 학습, 지역공동체 활동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의미하는 ‘일·생활 균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일·생활 균형은 여성이나 육아 중인 여성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일과 가정 내지는 일과 생활의 균형 있는 삶을 성평등한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성평등한 관점에서 일·생활 균형은 여전히 몇 가지 문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첫째 일·생활 균형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인 유연근무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에 따라 계층화돼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남성이 18.2%, 여성이 15.2%였다. 이에 의하면 자칫 우리나라 유연근무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으로 성평등이 확보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이 노동시장 내의 취약한 지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결과가 이해된다. 통계청에 의하면 유연근무제도는 주로 300명 이상 대기업과 정규직에서 활용된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여성노동자는 주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및 서비스직 등 주변적 노동자에 집중됨에 따라 일과 생활을 위한 기회가 이중화 및 성별화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생활 균형이 보편적 집단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책적 개선이 시급하다.

제도가 마련돼 있더라도 더욱 중요한 문제인 일·생활 균형제도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제도 사용으로 인한 불이익’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그간 중앙정부의 일·생활 균형은 고착된 성별분업 인식개선 내지는 기업 내 제도 마련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으며, 실제로 중앙정부의 우수사례나 인증사업 역시 제도 유무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론 제도 마련을 위한 환경조성은 일·생활 균형의 출발점이기에 제도 마련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 차원에서의 제도 마련과 개인 차원에서의 제도 사용 용이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현장에서는 제도 사용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거나 조직문화에 부적합한 노동자로 보는 시선, 그리고 이를 토대로 더 낮은 고과평가와 소모임, 회식 등의 따돌림 문제는 심각하다.

실제로 2021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 남녀조합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생활 균형제도는 주로 여성이 사용하고 있으며, 제도 사용과 고과평가나 따돌림 등 차별적 경험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확인된다. 즉 중앙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일·생활 균형을 위해 가족돌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고했으나, 결국 돌봄의 여성화를 강화했으며, 여성을 차별적 노동환경에 직면하도록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불이익에 직면했을 때 주된 대처방식은 그냥 참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은 사회적 보호장치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는 차별을 경험한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경험도 관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과 생활을 양립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가속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쉽게 말해 제도 사용으로 인한 불이익은 온전히 여성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 사용으로 인한 차별 내지는 불이익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시작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도 사용으로 인한 차별을 방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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