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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전환기의 노동, 길을 묻다](하)“연대보다 내 것 먼저” 현실에 무릎 꿇은 정규직  
이 름 : 경향신문
내 용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좋은 노조가 좋은 나라를 만든다

코로나로 무급휴직·해고마스크의 외침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이 장기 농성 중인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 벽면에 31일 코로나19 사태로 해고나 무급휴직을 당한 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힌 마스크들이 걸려 있다. 최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이어지고 있다.

건보공단 상담사 직접고용 요구

사측은 노조 반대 이유로 미뤄

정규직들, 임금·복지 손해 우려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은 외면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예전에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민간 대기업은 물론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서도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때 생긴 노동조합이 이제 30년이 넘었다. 당시 우리와 처우가 비슷했던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빠지면서 지금은 우리가 기득권이 됐다. 연대하기보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건강보험공단 50대 정규직 A씨는 31일 공단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11개 민간위탁업체 소속인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따른 직접고용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단은 최근까지도 결정을 미뤄왔다. 

공단이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은 정규직 노조의 반발이다. 공단이 미적대는 사이 정규직의 반대 목소리는 더 커졌다. 지난해 5월 정규직 노조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에 반대한다는 답변이 75%가 넘었다. 이후 노조는 직접고용 사업 추진을 사실상 접었다. 지난해 말 치러진 정규직 노조위원장 선거에선 조합원 동의 없는 고객센터 직접고용 반대를 내건 현 집행부가 다른 두 후보를 제치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됐다. 역시 50대인 정규직 B씨는 상담사들이 직접고용돼도 일반직이 아닌 업무지원직이라 우리가 손해볼 일은 없을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 우리 몫이 줄어들 거라는 논리였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사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쪼개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인 연대는 정규직의 압도적 현실 논리 앞에 맥을 못 춘다. “조합원 이해만 대변하는 노조는 하나의 이익단체에 불과하다. 민주노조가 존립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B씨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게 현실이다. 

원래 공단 정규직이 담당했던 상담 업무는 2006년 외주화됐다. 정규직이 높은 수준의 임금과 사내 복지 혜택을 누릴 때 비정규직 상담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 경력이 쌓여도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2년 단위인 공단과 위탁업체의 계약 갱신 때문에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고용 안정과 연공급을 적용받는 게 상담사들의 꿈이다. 하지만 정규직은 여기에 냉담하다 못해 대놓고 반대한다. 자신의 파이’(기득권)를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도

노동, ‘대화의 장에서 싸워야

한광옥 노사정위원장(가운데)과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1998120일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뒤 손을 잡고 있다. 2005315일 서울 잠실 교통회관에서 열린 제35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단상점거를 시도하자 찬성하는 조합원들이 이를 저지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가운데) 등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합의안이 대의원 투표에서 부결된 다음날인 2020724일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위 사진부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연공급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노동시장의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호봉제 등 연공급 독점이 주원인

고용 확대·임금 조정 교환 제안은

노동계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난제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가 복합돼 나타난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세계적으로 확인되는 현상이라면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는 한국적 특수성에 가깝다는 것이 이 문제를 연구해온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의 설명이다. 

정교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현격한 격차의 주된 원인은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이라고 짚는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높은 임금과 기업 복지, 연공급을 독점적으로 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다른 나라가 갖고 있지 않은 연공급은 (지금과 같은 저성장기에)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연공급을 당장 폐지하지 않더라도 연공성을 줄여 나가는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은 고용 확대와 임금 조정을 맞바꾸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지급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고용을 늘리는 대신 임금은 평균에 수렴하도록 조정해 청년들에게 돌아갈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노조가 지금처럼 사업장 내 임금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추구하면 총고용 확대는 불가능하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공공부문에서 고용 극대화를 하려면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 (같은 직무를 하는데도 소속 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봉이 수천만원씩 차이 나는 상황에서) 기관별 직무·직능급 도입은 아무 의미가 없다사회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임금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화 대상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차별 없는 임금체계 적용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공공부문 정규직이 적용받는 호봉제는 평생 안정적인 임금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공급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부문 내부의 격차는 줄일 수 있지만 민간을 포함한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전문가들은 노동운동 대의가 전체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연공성을 낮추는 방향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임금체계 개편은 매우 예민한 주제이다. 박근혜 정부 때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다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규직 노동자) 누가 직무급이 나쁘다고 하겠느냐면서도 어떤 직무에 얼마의 임금을 줄지, 성과는 어떻게 측정할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노조가 이기적이라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변화를 가져오려면 이해관계를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출처: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6010600005&code=9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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